"얼마 전 전세 갱신계약서를 썼던 세입자들이 법 통과 후 다시 계약을 조정해 쓰자고 하고, 집주인들은 반발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강남구 대치동 S 공인 대표)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나가겠다고 했던 세입자들이 생각을 바꿔 눌러앉으려 하면서 집을 보러 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전화도 피하고 있어 집주인들이 난감해하고 있네요."(마포구 아현동 R 공인 대표)
세입자의 전월세 거주를 최대 4년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일 전월세 임대차 시장은 혼란한 모습이다.
국회 상임위 상정 사흘 만에 법이 '초스피드'로 시행되면서 전세 계약 갱신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도 현실화하고 있다.
기존 세입자들은 법 시행을 반기고 있지만, 신혼부부 등 신규 세입자들은 오른 전셋값과 전세 품귀를 우려하고 있다.
2일 서울의 공인중개사 사무소에는 일요일인데도 전세 관련 문의가 빗발쳤다.
법이 빠르게 통과되면서 다양한 사례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지만, 공인중개사들도 어떤 경우에는 충분한 대답을 내놓지 못해 임대인·임차인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용산구 H 공인 대표는 "떠밀리듯 법이 통과되면서 지금 시장에 혼선이 크다. 오늘 받은 문의만 해도 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게 많다"며 "계약갱신을 하면 2년 다 채울 필요 없이 세입자가 언제든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는 건지, 계약을 1년만 하는 경우 1년 후 또 1년에 대해서만 갱신 청구가 가능한지 등 다양한 사례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긴장감이 감도는 사례도 있었다.
대치동 S 공인 대표는 "전세는 보통 계약 만기 2∼3개월 전에 갱신 계약서를 쓰는데, 얼마 전 계약서를 썼던 세입자들이 임대차법 통과 이후 계약상 만기가 지나지 않았으니 다시 계약서를 쓰자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보증금을 5%만 올리는 거로 다시 쓰자는 건데, 집주인들은 당연히 안된다고 버티고 있어 분위기가 서늘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2년 전 전세 보증금이 12억원 안팎에서 2∼3개월 전에는 16억5천∼17억원으로, 지금은 17억5천∼18억원 선으로 뛰었다.
최근 재계약한 세입자들은 전셋값을 4억원 넘게 올려주기로 했는데, 새 법 시행에 따라 기존 보증금 12억원의 5%에 해당하는 6천만원만 인상하는 거로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한다는 것이다.
S 공인 대표는 "새 법을 기존 계약에까지 소급 적용해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분쟁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 집주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하면서 직접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는데, 세입자 입장에선 계약서까지 쓴 상황에서 집주인이 갑자기 들어온다고 하면 쉽게 믿겠나. 이런 사례가 한두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이번에 새로 도입된 2년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려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아현동 R 공인 대표는 "10월에 집을 비워주기로 했던 세입자가 법 통과 후 다른 전셋집 구하기가 어렵다며 더 살게 해달라고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집주인의 문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지만, 법 시행으로 계획대로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보증금도 시세만큼 올려 받지 못하는 집주인은 크게 당황해하고 있다고 했다.
R 공인 대표는 "사실 그 집주인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강남에서 전세를 살면서 최근 보증금을 2억원 올려줬다고 한다. 자기 집 전세를 올려 이걸 메우려 했는데 난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그 세입자는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집주인이 화가 많이 난 상태"라며 "세입자가 괘씸하다며 2년 뒤 나갈 때 못 자국 하나까지도 꼼꼼히 보고 문제가 있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집주인이 벼르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집주인과 세입자 간 희비가 엇갈리는 사례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문모(52)씨는 자신을 '임대차 3법의 최대 수혜자'로 생각한다고 했다.
2018년 9월 보증금 6억6천만원에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문씨는 최근 계약 만기를 앞두고 보증금을 1억6천만원 올려주기로 했는데, 법이 빨리 통과되면서 보증금의 5%에 해당하는 3천300만원만 올려주면 된다며 웃었다.
문씨의 경우 1억2천만원 넘는 보증금을 더 내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셈이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소유자 조모(37)씨는 "임대차법 통과로 직격탄을 맞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씨는 "분양받고 작년 초 보증금 6억9천만원에 전세를 줬다. 담보대출도 있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고 2년 뒤를 기약한 건데, 지금 전세 시세가 14억원 수준이지만, 시세를 반영해 전셋값을 올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법 시행 반기는 기존 임차인…신혼부부는 오른 전셋값·품귀에 '울상'
10년 전 결혼하면서 서초구 양재동 한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한 김모(43)씨는 새 법 시행을 반겼다.
2번 이사 끝에 지금은 반전세로 사는 김씨는 "2년마다 전세 보증금을 8천만원에서 1억7천만원까지 올려줘 봤다. 아내와 맞벌이하면서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감당해왔지만, 2년 전 결국 보증금 올려줄 돈이 모자라 기존 보증금에 월세 60만원을 보탠 반전세로 돌려 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재계약 시즌이 되면 이번엔 집주인이 보증금을 얼마나 올려달라고 할지, 또 이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밤잠을 설칠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다"며 "누가 뭐래도 세입자 입장에서는 4년간 쫓겨나거나 전셋값이 크게 오를 걱정 없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2 신도시에서 보증금 3억1천만원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최모(52)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벌고 아껴 써도 자식 교육비 대고 생활비 갖다주려면 1년에 1천만원 저축하기도 버겁다"면서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뛰면 더 싼 데로, 더 외진 데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데, 4년간 이사 안 가고 전셋값이 안 오르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새 법 시행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전세 물건이 품귀를 빚으면서 신규 세입자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2월 결혼을 앞둔 이모(34)씨는 "예비 신부와 함께 전셋집을 보러 다니는데, 지난주 봤던 집은 보증금이 며칠 새 5천만원 올랐다고 하고, 전세로 봤던 집들은 반전세나 월세로 돌렸다고 한다"며 "대출을 생각한 예산을 크게 넘는 수준이어서 새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할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성동구 H 공인 대표는 "기존 임차인들이 이제 웬만하면 2년 더 거주하려 하고, 보유세 강화로 실거주를 생각하는 집주인이 많아지면서 전세가 씨가 마르고 있다"며 "전세 품귀에 자동으로 가격도 오름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 등 수도권의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어 전세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천21가구로, 올해(4만8천567가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을 제외한 경기·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도 내년 11만7천865가구로, 올해(14만258가구)보다 17.5% 줄어든다.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 감소는 전월세 물량 감소로도 이어진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새 제도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잠기고 4년마다 임대료가 한꺼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를 보증부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많아져 임차인의 부담이 커질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NH투자증권[005940] 김규정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 물량이 부족하고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올라가는 시기에 임대차법까지 시행돼 전세 시장이 더 불안해지는 측면이 있다"며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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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2, 2020 at 12:3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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