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원 기자] 항공사 인수·합병(M&A) 계약들이 줄줄이 취소되자 계약금의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인수 기업들이 앞서 지급한 계약금을 찾기 위해 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피인수 기업이 계약금을 돌려줄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딜이 모두 무산되면서 이행보증금 반환을 위한 법적 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HDC현산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인수대금의 10%인 2500억원을 지급했다. 제주항공은 지난 3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당시 115억원을 이스타항공에 줬다.
항공사 인수·합병(M&A) 계약들이 줄줄이 취소되자 계약금의 향방에 이목이 쏠린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모습. 사진/뉴시스
M&A 이행보증금이란 인수희망자가 인수 본계약까지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선지급하는 돈으로, 통상 인수자가 매각자 또는 매각 주관사에 지급한다.
보증금을 선지급한 HDC현산과 제주항공은 아직까지 반환 소송을 접수하진 않았지만, 각각 법리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산은 최근 계약금을 포기하라는 금호산업의 요구에 "절차 이행 통지에 대해 법적인 검토 이후 관련 대응을 진행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제주항공도 구체적인 법적 대응 계획은 없지만 계약금 반환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행보증금을 돌려받는 절차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조계와 항공업계는 아시아나항공·이스타항공의 경영 상황을 악화시킨 코로나19가 '중대악화사유(Material Adverse Change·MAC)'로 인정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MAC 조항은 인수되는 기업의 가치가 중대하게 훼손될 경우 매수자가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까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조항이다.
문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특정 기업만이 아닌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도 MAC 조항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다. 법조계에서는 MAC 관련 판례가 해외에서도 드물어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악화한 인수 대상 항공사들의 재정 상황도 문제다. 계약금 반환 판결이 나와도 자본잠식 상태인 항공사들이 계약금을 내놓을 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에 지급한 이행보증금 115억원 중 100억원은 이스타항공 운영자금으로 사용해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운항 전면 중단 조치인 '셧다운' 상태인 데다 최근엔 제3인수자 물색 일환으로 직원 절반을 내보내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는 1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기준 6449억원이었던 자본금이 올해 상반기 4880억원으로 급감하면서 부채비율도 2366.1%로 전년비 570%p 증가했다.
피인수 기업이 계약금 일부를 돌려받은 사례로는 한화그룹이 있다.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면서 소송을 통해 계약금으로 지급한 3150억원 중 1260억원을 돌려받았다. 당시 M&A 해지의 이유로는 금융위기로 인한 기업 상황 악화와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정밀 실사 저지 등이 있었는데, 법원은 실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무게를 두고 계약금 일부 반환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계약금 반환 소송 절차로 넘어갈 경우 소송 장기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일각에선 상호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만 그동안 HDC현산-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이스타항공 간 책임 공방과 기 싸움이 계속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항공업계 두 건의 M&A가 느슨해지는 과정에서 계약 해지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는 '명분 쌓기'가 이어졌다"며 "합의로 간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계약금 사수에 공을 들이지 않은 기업이 없는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승원 기자 cswon8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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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5, 2020 at 03:5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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